진주
어떤 임금님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이 진주를 뽐내기 위해서 임금님은 진주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진주를 꾸미기 위해 값비싼 비단과 보석, 물감과 여러 가지 장식물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장식들 때문에 진주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진주를 꾸미려는 이 장식들이, 오히려 진주를 가리고 만 것입니다.
바보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종종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복음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장식품이 바로 기독교 문화 또는 교회 문화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려고 살펴보았더니, 어느새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혀 보이질 않는 겁니다. (다른 말로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보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오늘의 주제 : 신앙과 신념
신앙과 신념
- 신앙
구원 또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관련됩니다.
- 신념
구원받은 신자의 상황과 관련됩니다. 신앙을 꾸미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통과 교회의 관습,신앙 습관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어쩔 때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만 또 어쩔 때 이것은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훼방하기도 합니다.
요나를 통해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요나에게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다.”
요나에게 온 세상, 온 우주의 참된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욘 1:9)』
특히 요나서 2장에서는 요나의 신앙 고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다 속에 있어도, 물고기 뱃속에 있어도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은 내 소리를 들으시고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욘 2장)
그런데 요나에게는 신념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에 말씀을 전하기 싫습니다. (욘 1장)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칩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념상 오직 유일한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시지, 니느웨의 하나님은 아니셨으니까요.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뒤에도 (욘 3장) 걸어서 3일이나 걸리는 큰 도성 니느웨에서 단 하루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억지로 전하기는 하겠는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 사람들이 듣는 게 싫었던 겁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심지어,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구원하시자 불평합니다. (욘 4장) 이럴 줄 알았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구원하시는 게 처음부터 싫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종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입니다. 저 사람은 우리 교회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 교회 안에서 학벌이나 부유함으로 그룹을 나누는 것도 요나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심지어 창녀와 세리들에게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그들이 오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충분히 착하지 않다는 거죠.
정리해 보겠습니다. 요나에게는 신앙과 신념이 있었습니다.
- 신앙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다.
- 신념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시다.
이때 신념이 신앙을 훼방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은 요나의, 그리고 유대인의 잘못된 신념을 바꾸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구요.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에게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는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면,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부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고넬료가 등장하고, 이방인들을 위한 바울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신념이 잘못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신념을 고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잘못된 신념이 우리의 신앙과 사명을 훼방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 신앙 : 하나님은 교회에 계신다.
- 나쁜 신념 :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신다. 세상은 모조리 사탄의 것이다. 영화, 예술, 문화, 학문은 보는 것도 안 된다.
우리에게도 얼마 전까지 그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가요를 들어?”
“듣는 것도 안 되는데 가수가 된다고?”
“영화를 봐?”
“영화 보는 것도 안 되는데 영화를 찍어?”
그런데 저런 잘못된 신념이 판을 치면서부터 기독교 국가나 마찬가지였던 미국이 세속 국가로 변하게 됩니다. 왜냐면 기독교인은 교회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서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유럽에는 기독교 문학, 기독교 예술이 융성했습니다. 유명한 책에는 기독교 신앙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요? 우리가 보는 어떤 드라마에도 기독교 정서가 담긴 것은 전혀, 하나도 볼 수가 없습니다.(조금 담긴 거라면 뭐, 몇 개인가 있긴 하더군요.)
기독교 가사가 담긴 가요는 정말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감격스럽게도 얼마 전에 한 명 나오긴 했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고요? 기독교 소설을 읽으면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거 볼 시간 있으면 성경이나 봐. 가요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의 음악을 한다고 못하게 했잖아요?
하긴, 판타지 소설만 봐도 그렇죠. <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은(판타지 소설의 시초라고도 합니다.) < 나니아 연대기>를 쓴 C. S. 루이스를 전도한 사람입니다. 두 소설 다 기독교 색채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판타지 소설을 보면, 반 기독교 정서가 넘쳐납니다. 기독교로 시작해서 반 기독교로 변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판타지를 보면, 판타지를 쓰면 교회에서 이상한 눈으로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진주
처음에 진주 이야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진주를 꾸미기 위해 가져온 장식들이, 오히려 진주를 가리게 된 이야기를요.
우리에게 있어 우리를 만나주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너무 소중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도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꾸미려고 만든 전통이,
혹은 우리의 신념이나 경험이 어느새 우리의 사명과 복음을 훼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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